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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left William in San Francisco”

글: 정광용 부총영사

6년 동안 키웠던 웰시코기 윌리엄을 새로운 주인에게 보낸 지 이제 한 달이 되었다. 

2015년 내가 남아공에 부임하고 3달 만에 집에 강도가 난입한 후 일종의 방범견으로 막 태어난 윌리엄을 입양하여 키웠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워낙 좋아하는 개이다 보니 장손의 이름인 윌리엄을 붙여줬다. 웰시코기가 맹견은 아니나 원래 양치기 개이다 보니 외부의 자그마한 소리에 대해서도 대형 맹견같이 요란하게 짖어대어 ADT 보안회사보다도 더 믿음직스럽게 남아공 남은 임기 1년 반 우리 가족을 잘 지켜 주었다. 2017년 한국으로 발령이 나서 서울로 데리고 왔으나, 한국의 아파트에서는 이웃 주민들의 따가운 눈총으로 도저히 키울 수가 없어서 거의 2년 동안 남양주의 개 훈련소에 맡겼다가, 2019년 샌프란시스코에 부임하면서 윌리엄을 데리고 왔다. 

3개 대륙 거쳐 미국에

외교관 주인을 잘못 만나서 졸지에 3개 대륙으로 옮겨 살면서 스트레스를 혹독하게 받게 되었다. 
자유의 도시 샌프란시스코라 견공 친화적일 것으로 생각하고 안심하였으나, 높은 데시벨로 짖는 것이 익숙했었던 윌리엄에게는 샌프란시스코의 1년은 예상치 못한 시련의 시기였다. 이웃 주민들은 윌리엄이 간혹 많이 짖으면, 집 문 앞에 온갖 악담을 담은 경고 메시지를 문 앞에 붙이고 간다거나, 집주인에게 일러서 집주인이 계약 위반을 이유로 우리에게 엄중한 경고를 하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짖을 때 매운 스프레이가 나오는 특수 줄도 목에 달아보곤 했으나 소용이 없어, 어린아이가 있어 방안에는 못 들여오고, 결국 반지하 1층에서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게 되었다. 

1년 렌트 계약종료 후 우리는 전혀 망설임 없이 이사하기로 하였고, 집을 정할 때 가장 중요했던 기준은 윌리엄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고, 이웃이 신경 쓰지 않는 곳이었다. 다행히 지금의 집을 찾았다. 윌리엄이 혼자 생활할 수 있는 양지바른 발코니도 있었고, 이웃집들과의 간격도 넓었다. 그리고 길가의 차 소리와 비행기 소리도 적당했다. 그러나 서울에서의 2년간 훈련소 생활, 샌프란시스코 1년 동안의 생활로 윌리엄은 영역 의식과 독자성이 커졌다. 그리고 또 다른 가족 구성원인 우리 아이에 대해서도 경쟁심과 경계심을 줄이지 않았다.

윌리암의 환경이 최우선

그래서 우선적으로 안정적인 루틴을 만들어 주는 데 신경을 썼다. 바쁜 총영사관 일정에도 불구하고 철학자 칸트처럼 주말도 없이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7시부터 30분간 윌리엄을 산책시키고 밥을 주고, 저녁에 산책시키고 밥을 먹이면서 루틴을 만들어 주었다. 
온전하지는 않으나 조금씩 회복이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부부 둘 다 바쁘다 보니 윌리엄과 놀아줄 시간이 많지 않다 보니 윌리엄은 낮에는 주로 테라스에서 잠을 자고, 낮잠을 많이 자서 그런지 밤에는 설잠을 자면서 지나가는 비행기 소리에도 종종 짖곤 했다. 

더 잘해줄 수 없어 미안한 마음을 계속 갖고 있었는데 샌프란시스코 임기종료가 점점 더 다가오자, 그래도 한국보다는 견공들이 살기 좋은 캘리포니아에 윌리엄을 남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굳혀갔다. 주변분들 한두 분께 조금씩 입양 의사를 물어봤으나 개를 넘겨주는 것은 양쪽 다 부담스러운 일이고, 특히 웰시코기는 더더욱 그러했다. 

8월 본국 귀임

작년 12월 현대뉴스의 김동열 대표님이 쓰신 칼럼에 17여 년 넘게 키우셨던 웰시코기가 저세상으로 간 후 길가 다 우연히 비슷한 개를 보고 추억에 젖으셨다는 내용을 보았다. 바로 전화를 드려 혹시 윌리엄을 입양할 생각이 있으신지 여쭈어봤다. 그러나 윌리엄이 대표님께서 키우셨던 개와 너무 비슷하게 생겼지만, 웰시코기 종이 본래 털이 많이 빠져서 이제 더는 키우기에 힘에 부치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후 몇 달 동안 거의 포기를 하고 있었는데 귀국해야 하는 타이밍이 다가오자 마지막으로 인터넷 개 입양 사이트에 윌리엄에 관한 정보와 사진을 올렸다. 놀랍게도 하루 만에 10명 이상이 입양 희망 의사를 밝히고 우리에게 구애하기 시작했다. 내 인생 태어나서 이렇게 다양한 인종으로부터 한꺼번에 관심과 구애를 받은 것은 처음이다. 우리 부부는 우쭐해졌고 윌리엄에 대해 자랑스러운 마음이 넘쳐났다. 

신청자들은 서로 왜 자신들이 윌리엄을 입양해야 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사연들을 적었다. 우리는 그중 산호세에 사는 웬디라는 중국인 중년 아주머니를 택하였다. 윌리엄이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마당이 있고, 예전부터 10년 넘게 웰시코기를 키웠는데 이번에 딸이 출가하면서 데리고 갔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에너지가 넘치고 털이 빠져서 키우기 힘든 웰시코기의 성향을 잘 안다는 점에서, 그리고 주인과 비슷한 얼굴을 가진 동양인이기 때문에 윌리엄이 더욱 편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최종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에 공공장소에서 웬디와 윌리엄 간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윌리엄은 우리 차에서 내리자마자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던 웬디에게 달려가서 그대로 꼬리를 치면서 안겼다. 당혹감과 질투도 생겼지만, 웬디와 윌리엄의 만남은 운명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웬디가 전에 키우던 개 이름은 ‘윈스턴 처칠’이라고 했다. 한국인이나 중국인이나 생각하는 게 비슷해서 웃었다.

중국인 가정에 입양

아직도 웬디는 우리에게 윌리엄의 사진을 계속 보내오고 있는데, 윌리엄과 집안에서 같이 생활하고, 산책도 해주면서 온종일 윌리엄과 재미있게 보내고 있다, 동내 꼬마들은 윌리엄이 귀엽다고 하면서 집까지 찾아와서 같이 놀아주고 있다. 웬디가 보내준 사진 속 윌리엄의 표정은 스트레스 없이 너무나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남아공에 있을 때 보았던 윌리엄의 표정이 다시 생각났다. 그동안 더 잘해주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과 함께, 웬디에게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웬디도 윌리엄으로 인하여 매일매일 즐거움을 누리고 있고, 동네 주민들에게도 한껏 우쭐해 하고 있다.

얼마 전 와이프가 윌리엄을 보려고 웬디 집에 갔다. 윌리엄은 와이프를 보고 너무 반가워 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가려고 와이프 차 문을 열자 윌리엄이 우리 집으로 돌아가려고 바로 차로 뛰어들었다. 아무리 부족한 부모라도 태어나자마자 키운 부모와의 인연은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것 같다. 

윌리엄이 떠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윌리엄이 무료해서 하면서 누워 있었던 텅 빈 베란다를 보면 아직도 뭔가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든다. 예전에는 주말에도 아침 6시가 되면 바로 눈이 떠졌으나, 이제는 7시가 되어도 피곤 감으로 바로 일어나기 어렵게 되었다. 매일 출근 전 윌리엄과 3천 보 이상을 걸었는데 산책을 하지 않다 보니 없어진 윌리엄 대신 내 배에 그만큼의 살이 차 오르기 시작했다. 윌리엄은 다시 행복해져서 수명이 늘었는데, 당신은 배에 살이 쪄서 수명이 줄어들 것 같다고 와이프가 놀린다. 

예전에 내가 김동열 대표님께 ‘개 키우는 사람 중에서 나쁜 사람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고 했더니 바로 동의를 하셨다. 물론 ‘개를 제대로 키우는 사람’에 한한 얘기일 것이다. 제대로 키우려면 개의 마음을 읽으면서 많은 신경과 시간을 써줘야 하는데, 어지간히 힘들고 시간이 많이 가는 일이 아니다. 돌이켜 보니 나는 ‘제대로 키운 주인’에 속하지는 아니한 것 같다. 하지만 최소한 윌리엄을 키우는데 시간을 많이 써야 하다 보니 나의 악한 마음을 외부로 실행할 시간적 여유는 없었던 것 같다.

이제 나는 3년 임기를 끝내고 8월 중순에 한국으로 돌아가지만, 한국에서 토니 베넷의 노래가 들릴 때마다 다시 이곳에 대한 추억에 젖을 것 같다. 
“I left William in San Franci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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