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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단어 “Mother”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가신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 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 엄마걱정)

겨우 열무 삼십 단을 가지고 시장에 팔러 가신 엄마가 해가 시든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엄마는 해가 지도록 30단을 다 팔지 못해 아주 늦도록, 열무가 시들도록 마지막 손님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 그래야 보리 한 되라도 사가지고 갈 수 있으니까.. 나의 유년 시절은 유복하진 않았어도 늘 집에는 엄마가 계셨다. 내가 집에 도착할 즈음이면  밖에 나와 서성이며 기다려 주던 엄마였다.  엄마가 여기에 사실 때 인디언 카지노로 게임 하러 가는 것을 좋아했다. 어느 날 나는 일이 끝난 후 “ 엄마 집에 갈께”  하고 전화를 드리고 엄마 집에 도착하니 엄마는 옷을 곱게 차려 입으시고 밖에 나와 계셨다. 나는 그냥 옛날처럼 막내딸 기다리신거구나 하고 다시 엄마 집에 들어가 밥도 먹고 쉬고 있었다. 몇 시간 후 엄마는 조심스럽게 “근데 언제 카지노 갈거니?” 하고 물으시는 것이었다. “웬 카지노? 내가 언제 간다고 했어? 엄마는 80이 다 되어가시자 “집에 갈께” 하는 내 소리를 “카지노  갈께”라고 잘못 들으신 것이었다. 이미 해는 저물기 시작하는데 티브이만 보는 딸을 보고 엄마는 조바심이 났었나 보다. 그렇게 엄마는 늘 내가 집에 도착할 즘이면 바깥에서건, 복도에서건 서성이며 나를 기다리곤 하셨다. 엄마가 85세가 되던 해  손주 결혼식에 참석하러 한국에 나가셨다가 내출혈로 돌아가셨다. 한국 나가시기 일주일 전 마지막으로 카지노를 모시고 갈 때 운전을 하고 있는 내 손을 꼭 움켜잡으시는 것이었다. “ 엄마 왜 그래? 하고 묻자 “ 아니 그냥 내 딸이 이뻐서” 단지 그 말만 하시며  배시시 웃으시던 엄마. 그 미소가 눈물겹도록 그립다. 조금 더 모시고 다닐걸 그랬다.

어머니

나에게 티끌 하나 주지 않은 걸인들이 내게 손을 내밀면

불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전부를 준 어머니가 불쌍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나한테 밥 한번 사준 친구들과 선배들은 고마웠습니다.

답례하고 싶어서 불러냅니다.

그러나 날 위해 밥을 짓고 밤늦게까지 기다리는 어머니께 감사하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습니다.

제대로 존재하지도 않는 드라마 속 배우들 가정사에 그들을 대신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일상에 지치고 힘든 어머니를 위해 진심으로 눈물을 흘려본 적은 없습니다.

골방에 누워 아파하던 어머니 걱정을 제대로 한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친구와 애인에게는 사소한 잘못 하나에도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잘못은 셀수도 없이 많아도 용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세상 떠나신 후 이제사 알게되서  죄송합니다.

아직도 너무도 많은 것을 알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 글은 서울 여대 “사랑의 엽서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난 딸 3, 아들 3 중  딸로서는 막내딸로 자랐다.  부모에게 존대말을 하라는 아버지 말씀을 거역하며 나는 중학교 즈음 슬쩍 어머니에서 엄마로 말을 바꾼 다음 막내 티를 내며 살았다. 정말 그랬다. 드라마 속 주인공이 아프면 같이 아파하였다. 그러나 돼지고기 잘못 드시고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무척 이나 고생하셨던 엄마한테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엄마니까 다 알아서 치료하시겠지 했다. 한국에 살 때 한 동안 우리 동네에 수돗물이 안 나와 물 차가 와서 식수를 배급해 준 적이 있다. 엄마는 가느다란 몸매에 어디서 힘이 났는지 커다란 양동이로 물을 열심히 실어날라 온 집안의 고무통, 장독등 모든 통에는 물이 가득했었다. 지금 생각하니 얼마나 힘들고 지쳤을지 상상이 안 간다. 그래도 엄마니까 당연한 몫이라 생각했다.   아버지 68세로 돌아가시고 19년을 혼자 사셨는데 진심으로 엄마의 외로움을 알아채지 못했다. . 예쁜 옷 사다 드리고 좋은 데 구경 시켜드리고 맛있는 것 사드리면 효녀라고 생각했다. 그냥 한 번쯤이라도 엄마 깊은 마음속에서 분출하고 싶은 이야기나 외로움을 들어드릴걸 그랬다. 그냥 여자이기 전에 엄마니까 잘 견디시나 보다 했다.

엄마!  5월 10일은 엄마 생신이네요.  다음 주에는 오빠 내외와 함께 우리 강아지 모끼와 함께 엄마한테 갈께요. 엄마는 또 92번 산 등성이 입구까지 나와서 저를 기다리시겠죠?  사랑하는 엄마! 정말 보고 싶어요. (elkimsociet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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