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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인의 좌충우돌 도전기

주대식

인체를 스케치 하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보기에는 쉬워 보이니까 빛을 보고 모여드는 불나방처럼 선뜻 연필을 들지만, 막상 첫 획을 그으려면 백지 위에서 많이 당황하게 된다.

나침반 없는 항해사 같은 느낌이랄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어느 부분부터 어디에 자리를 잡아야 하는지 망설이게 된다. 

바로 그 순간 세상에 쉬운 일이란 없는 법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아는 것이 너무 초라하구나.  사람이란 모름지기 겸손해야 하느니 – – – – .    옛 선지자의 말씀이 귀에 감긴다.

혼자 고민하면서 연습해 왔다.  기초도 없고 누구에게 배운 것도 아니다.

얼추 균형을 잡고 각 부분의 위치를 찾았다 싶어 부분으로 들어가다 보면 처음 잡은 모습은 사라지고 지체 각 부분이 따로 노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아니로군 – – – –  실망하게 되고 곧이어 탄식이 터져 나온다.

그래서 일찍이 시인 김병연은 질타했는지 모른다.

‘스스로 깨우치는 것은 오래 걸리고(自知는 晩知고) 도움을 받아 공부하면 빨리 깨우칠 수 있다(輔知는 早知라).’ 

인체 소묘는 정말 어렵다. 

더구나 모델의 포즈는 그렇지 않아도 곡선으로 이루어진 몸의 각 부분을 비틀고 꺾어 놓아 그 각도를 찾아내는 것이 초보자에게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이 세상의 수 많은 미술 하는 사람들이 겪었을 그 과정을 생각하면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 조금은 짐작하게 된다.

형태나 윤곽을 찾아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인고의 과정이고 실망과 좌절의 연속이다.

어떻게 신은 인체에 저런 오묘한 곡선을 숨겨 놓았을까.

얼핏 보기에는 당연하게 있어야 할 자리에 각 부분이 붙어 있는 것 같아 너무나 자연스럽게 보아왔던 지체들이 마치 퍼즐 맞추기처럼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다.

이거다 싶어 긋고 보면 그게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시행착오를 하다보면 부분적으로 고쳐야할 곳이 눈에 뜨이기도 하는데 이렇게 저렇게 고치다보면 결과물은 엉망이 되기가 일쑤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얻은 결론이 있다면 수정할 때 부분에만 집착하다보면 전체적인 균형이 깨져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면 실망의 심도는 더 깊어지고 심하면 짜증이 폭발하게 된다.

왜 안되는 거지?  무엇이 잘 못 되었지?  어디서부터 틀린거야?  나는 왜 이런 사소한 것도 못하는 거야 도대체 – – – – -.

급기야 나는 연필을 집어 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잠시 창밖을 내다보며 눈을 식힌 후 호흡을 가다듬고 돌아와서 보면 아까까지는 보지 못했던 또 다른 면이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서 나는 휴식의 필요성을 자각한다.  거리두기와 숨 고르기 과정이 있어야 하는 소이연이다.

노력한다고 붙잡고 있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다시 수정의 단계로 들어갈 때는 과감하게 전체를 보며 고쳐 나가기 시작한다.

다 지워버리고 다시 시작한다.

스케치를 가르치는 ‘선각자’들은 되도록 지우개 흔적을 없이 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잘못된 스케치북을 찢어버리지 않고 거기에서 다시 수정하며 틀린 곳을 찾으려고 왔다 갔다  한다.  

비록 연필 자국과 고친 흔적이 만연해 있더라도 문제를 그 자리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다.

하다 보면 지저분한 흔적들은 점차 사라지겠지 – – – – – 

그렇게 해서 나온 완성(?)된 소묘가 결코 성공한 것은 아닐지라도 거기까지의 과정을 통하여 얻은 각성은 소득이다. 

처음 그은 선이 얼마나 진실과 괴리되어 있었나를 알게 된다.

부분보다 전체를 봐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인체(여체)는 신의 걸작품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 그것은 진실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결코 신의 경지에 이를 수 없고 더구나 흉내도 낼 수 없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다만  그 경지를 따라잡고자 하는 불나방과 같은 모습일 뿐인 것 같다.

신은 왜 그런 짓궂은 장난을 했을까.

저 높은 곳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을 그는 좌충우돌하는 어느 한 노인의 작태를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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