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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곡과 쭉정이

박성희

요즘 주위에서 자녀들이 졸업한다는 소식과 함께, 이들이 계속 진학하는가 하면, 사회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많이 전해 듣는다. 우리가 모두 한번쯤은 겪어보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나의 삶에 과정에서 한 단락을 접으면서 ‘좀 더 잘할걸’ 하는 후회와 ‘그래도 잘 견뎠어.’ 하는 격려가 엇갈리는 순간! 나에게 새롭게 펼쳐지는 삶의 장에게 걸었던 기대와 기다림의 설레임 또한 한 때의 일장춘몽이었을까? 그동안 그 긴 세월의 삶의 역사를 쓰면서 ‘혹시 나는 쭉정이 아니었나 아님. 처음부터 알곡?

우리가 알다시피 콩을 심을 때 모든 콩에서 싹이 트는 것이 아니다. 흠 없고 온전한 콩이어야 이듬해 싹이 나고 열매를 맺는다. 벌레 먹지 않고 좋은 콩을 고르기 위하여 그 옛날 어른들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비법은 콩을 한 움큼 쟁반 위에 올려놓고 한쪽으로 기울이면 온전한 콩은 한 방향으로 굴러 한곳에 모이지만 썩거나 모가 난 콩은 제자리에서 꿈적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곡식에는 알곡과 쭉정이가 있다. 무게가 있고, 고개가 숙어진 것이 알곡이지만 쭉정이는 항상 머리를 들고 있고 가볍다. 인생을 살아갈 때도 삶에서 알곡과 쭉정이가 나누어지는 것을 많이 경험한다. 이쯤에서 나의 인생에서 수확할 때 남은 결실이 알곡일지 쭉정이일지 궁금해져 그동안 스스로 심은 씨앗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쭉정이 인지 아닌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 우연히Lauralee Summer의 “Learning Joy from Dogs without Collars: A Memoir”를 만났다. 1998년 화창한 여름에 Harvard 대학교의 졸업식에서 졸업장을 받은 스물한 살의 졸업생과 그녀의 어머니가 서로 껴안고 감격스러워서 하는 장면이 좀 남달랐다. 졸업생인 Lauralee Summer와 그녀의 어머니 Elizabeth Summer는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던 노숙자였다. Harvard 대학교의 졸업장을 손에 쥔 Lauralee는 자기가 성장하는 동안 깨끗한 옷 한 벌도 입혀주지 못했고 비스킷 몇 조각으로 끼니를 때우게 한 어머니를 원망하는 대신 다음과 같은 찬사를 보냈다. “내 작은 뜀박질이 영예스러운 Peter Pan 같은 탐험이 되었고, 나에게 결코 불가능의 지역으로 보였던 교육, 특권, 학문과 지식에 접할 기회를 주었다. 이것은 나의 어머니의 끊임없는 돌보심과 인도 그리고 내 마음을 사고력, 교육, 및 독서에 집중시켜 주신 덕이다. 이 어머니의 큰 사랑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  Lauralee Summer가 초중고 학교를 거치는 동안에는 노숙자 보호시설에서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고 입을 옷도 먹을 것도 변변하지 못하여 어머니에게 증오와 원한의 폭언을 수없이 했었다고 한다. 그래도 그 어머니는 하나밖에 없는 딸과 최대한의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웰페어에 의존하고 좋은 교육의 기회를 얻도록 하기 위해서 캘리포니아의 노숙자 시설에서 Harvard 대학을 비롯하여 대학이 많은 Boston으로 이주를 했다. Lauralee 어머니는 노숙자의 시설에 비치된 간이침대에서도 딸에게 더욱더 넓은 세계관과 경의감을 심어 주기 위하여 많은 책을 읽도록 했다. 특히 초등학교 시절부터 Shakespeare의 작품을 읽게 하여 고등학교에서 Lauralee 가 제출한 산문을 읽어본 선생은 그 글이 고등학교 나이의 학생이 썼다고 믿을 수가 없어 어디에서 베껴 왔다고 야단을 치기까지 했다. 비록 가난한 노숙자이었지만 Lauralee의 어머니는 맹모삼천을 연상하게 하는 자랑스러운 어머니였다. Boston으로 이주해 왔을 때 차도 없고 안정된 집도 없고, 돈도 거의 없었던 Lauralee는 가난과 계급 차이로 인해 분노와 좌절의 시간을 느꼈지만, 회복력, 새로운 경험에서 자립하는 법을 배웠다. 이 힘든 시기에 매사추세츠 퀸시 고등학교의 헌신적인 교사 Mr. Mac덕분에 Summer는 마침내 일관되고 장기적인 노력이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인지 처음 맛보았고 이에 힘입어 학교 레슬링 팀의 유일한 소녀가 되어 Harvard에 진학한다. 

참으로 우여곡절 속에서 쭉정이처럼 버려졌을지도 모를 삶이었지만 어머니의 끝없는 사랑과 보살핌으로 알곡이 되었다. 분명 지금 나의 모습은 내 어머니의 헌신적인 산물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에겐 내가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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