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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이별

주대식

캐나다 밴쿠버 항구.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저 멀리 보이는 휘슬러 산맥의 정상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하얀 머리띠를 두른 듯 아득했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훈풍은 옷깃을 파고들며 나를 간질였다. 

그때였다. 휴대전화에 우리 동네 통반장 폐기로부터 이 메일이 하나 들어왔다.

내일 모레 에디와의 송별 아이스크림 파티가 동네 어귀 나무 그늘 아래서 있으니 가능하면 참석하라는 내용이었다. 

에디가 떠나간다고?  아이스크림으로 송별 파티를 한다고?

나는 약간 어리둥절했지만 지금 캐나다 밴쿠버에 있으니 참석할 수는 없고 무슨 사연인가 궁금했지만, 휴가 끝나고 돌아갈 때까지 참고 기다리기로 했다.  돌아가서 자세한 내용을 물어보리라.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우버를 타고 집에 막 도착했을 때 마침 외출 준비를 마친 페기와 맞닥뜨렸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엊그제 메일이 무슨 내용이냐고 물었다.

페기는 우리 옆집에 사는 에디가 캘리포니아 생활을 정리하고 위스콘신으로 떠나게 됐다고 했다.

위스콘신으로 떠난다고?  왜?

요즘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서 그의 딸이 아버지를 모셔다가 가까이서 보살펴드리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럼 에바도 같이 가겠네?  (에바는 에디의 여인이다.)

건강 상태가 안 좋기로 말하자면 에바도 에디 못지않게 쇠약해져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재차 물었다.

그러나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들은 결혼한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간단한 짐 정리만 끝내면 둘 사이는 그만이라는 것이었다. 

다툼이 있는 부부 사이에서 있을 수 있는 재산 분할이나 분쟁 같은 것이 없이 쿨-하게 헤어질 수 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 수 있겠다.

에디의 딸 부부는 벌써 전부터 그들과 함께 머무르면서 이별의 수순을 밟아가고 있다고 한다.

내가 며칠 동안 집을 비운 사이에 생긴 일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또 한 가지 궁금증이 남았다.  그러면 에바는 어떻게 되는 거냐?

보아하니 그녀도 건강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데 그래도 혼자서 괜찮다고 하더냐?

마침 그녀의 아들이 버클리에 살고 있어서 자주 어머니를 보살피게 될 것이라고  페기가 말했다.

아!  그럼 됐다.  

일단 궁금증이 풀리니 내 마음도 조금은 안정됐다.

힐끗 에바의 집을 바라보니 창마다 커튼이 내려져 있고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집처럼 적막강산이다. 두 노인네가 애써 가꾸던 문 앞 화분의 꽃들도 조금 시든 것 같다. 

에디와 에바 커플은 아침저녁 산책길에서 늘 만나던 내 이웃이었다.

8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그들의 건강 상태는 나이에 비해서 썩 괜찮아 보였는데 세월은 어쩔 수 없었는지 요 얼마 전부터 에디가 부쩍 어눌해지기 시작했다고 느끼던 참이었다.  아! 결국 그렇게 됐구나. 에디는 여든아홉이라고 했다.

어제저녁에 골프를 마치고 들어오는 길에 에디와 마주쳤다.

마침 딸 부부가 그를 모시고 공항으로 떠나는 길이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만나지 못할 뻔했다.

나는 약간 큰 목소리로 악수를 하며 헤어지게 돼서 섭섭하다고 떠벌렸더니 그도 허허 웃으면서 인생 그렇게 됐다고 어깨를 들썩하며 웃었다.

사실 그의 목소리는 약간 처져 있었으나 과장된  웃음으로 에바와 헤어지는 슬픔과 아쉬움을 애써 포장하려는 듯 했다.  
그러나 굽은 어깨에 걸쳐 있는 짙은 우수는 감출 수 없었다. 

나는 굳게 악수를 하면서 또다시 만나자고 덕담을 건넸지만 사실 그런 기회는 아마 다시 오지 않을 확률이 크다는 것을 서로 잘 안다. 

살아있는 동안 그의 가장 젊고 건강한 이 저녁에 악수하며 떠나는 길을 배웅하고 들어와 조금은 쓸쓸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딸 부부와도 활짝 웃으며 작별을 고했지만, 어딘가 허전함을 숨길 수 없었다.

이제 에바는 혼자 남게 되었다.

그녀의 아들이 가끔 들여다보며 돌봐 드리기는 하겠지만 어디 서로 기대며 살아온 잔불 같은 에디의 따스할 만하겠는가.   

그녀가 느끼는 혼자 사는 집은 마치 온기가 점점 식어 가는 구들장같이 싸늘할 것이다.

누군가 불 꺼진 아궁이에 군불을 지펴줄 사람이 있다면 좋겠지만  – – – – – 

며칠 전부터 부쩍 많아진 낙엽이 바람에 흩날린다.  올해는 가을이 일찍 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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