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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돌솥

김경년 (버클리 거주 시인, 문학번역가)

   나이 먹어가면서 자주 일어나는 일 하나는 음식을 태우는 일이다. 스토브에 음식을 올려놓고 다른 일에 잠깐 정신이 팔려 새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렇게 해서 음식만 타는 게 아니라 냄비와 번철을 태우는 일이 수도 없이 많다. 그리고 탄 음식에서 풍기는 악취가 며칠씩이나 온 집안에 진동을 한다. 그럴 때마다 “음식을 스토브에 올려놓고 부엌에서 자리를 뜨지 말아야지.”하고 다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내 노인 두뇌는 그 다짐조차 잊어버린다. 언젠가는 화재 경종이 작동을 해서 다행이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화재가 일어날 뻔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운이 좋은 것을 감사히 여기고, 조심해야 되겠다 하면서 자신을 나무란다.

   음식 탄 냄새를 없애는 방법은 없을까?

친구는 “작은 냄비에 물을 조금 넣고 커피 한 술을 넣어 끓이면 음식 냄새가 제거된다.”고 일러주어 그래도 다행이었다.

   한편 태운 냄비를 아무리 애석해 하며 구제하려고 해도 속수무책이다. 요즈음 같이 물자 흔한 세상에도 같은 물건을 구입하여 대치하기가 쉽지 않다. 왜 그런지는 좀 이해가 안 된다. 

   하루는 내가 매우 아끼며 써온 1 쿼트 짜기 작은 리비어웨어 냄비에 계란 하나를 반숙하다가 새까맣게 태웠다. 냄비가 식기를 기다려 수세미로 문질러 보니 잿가루 같은 회색 껍질이 벗겨지고 까맣게 탄 것은 씻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물을 넣고 스토브에 올려 놓아보니 폭발이라도 할 듯이 불길한 노크 소리가 났다. 

   “큰 일 당하기 전에 버리자!”하고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 후, 비슷한 크기의 냄비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마땅한 것이 안 보였다. 마침 친구들과 점심을 하면서 나는 이 “오호통재라! 타버린 냄비” 이야기를 꺼냈다. 듣고 있던 한 친구가 “똑같은 건 아니지만, 그 크기의 냄비가 하나 있는데 쓰시려면 드릴게요.” 하며 며칠 후 상자에 든 자그마한 도자기 냄비를 하나 주었다.

   첨부된 설명서를 읽어 보니 오븐, 마이크로 오븐, 스토브 모두 사용 가능하고 설거지 기계 세척도 가능하다고 한 만능냄비였다. 돌솥처럼 무겁지는 않았지만 색깔도 예쁘고 한번 더워지면 곧 식지 않을 듯한 무게와 두께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크기가 일 인분의 찌개, 국, 우동 등에 적당한 크기였다. 국물 음식을 선호하는 남편을 위해 안성맞춤이겠다는 생각을 하며 고맙게 받아가지고 왔다. 

요즘 그 냄비를 긴히 잘 쓰고 있는데 그 그릇을 남편 앞에 가져다 놓을 때마다 기억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80년도 더 지난날, 나의 어머니가 시집오실 때 가지고 왔다는 곱돌솥이다. 나의 할아버님 (어머니의 시부님)은 맵고 뜨거운 음식을 매우 즐기셨는데 고추장 두부찌개를 그 자그마한 돌솥에 끓여 할아버님 진짓상에 놓으면 식사가 다 끝나실 때까지 식지 않고 바글바글했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개스와 전기, 마이크로웨이브 등 여러 가지 편리한 가열 장비가 없고 숯불 풍로에 음식을 하던 그 시절, 식지 않고 오랫동안 열을 보존할 수 있었던 곱돌솥은 단연코 효자 솥이었음은 틀림없다. 

   어쨌든 그래서 할아버님이 나의 어머니 (할아버님의 큰 며느리)를 매우 사랑하셨다고 들었다. 하긴 나도 그 까만 곱돌솥을 기억하는데, 아주 훗날 한국식당에서 돌솥비빔밥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돌솥에 대한 감회가 남달랐음은 그 역사가 꽤 깊은 것이었다. 

   어머니와 같이 시집와 시부님께 효도한 곱돌솥! 이제 내가 아끼며 남편 앞에 갖다 놓는 또 하나의 그릇. “태우지 말고 잘 쓰자”고 굳게 다짐을 해 본다. 

      2021년 2월 4일 (입춘 날)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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