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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박만기 님 그는 우리들의 희망이었다. 고인의 타계를 진심으로 애도한다

새크라멘토 한국학교 이사장 강현진

고(故) 박만기 님

  새크라멘토 지역에 한인들이 정착한 지도 반세기가 지났다. 그동안 한인사회는 물적 양적 발전은 타 소수민족이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비약적 발전을 가져왔다. 
그런 발전의 뒤안길에는 수많은 지역 봉사자, 단체장들의 헌신적 노력의 덕분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런 봉사자 중에는 고 박만기 씨는 가장 커다란 봉사와 희생정신이 있었다는 것을 지역 한인들은 공인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 훌륭한 봉사와 지역사회를 위해 애써왔던 고인의 타계는 실로 우리 한인사회의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진심으로 고인의 타계에 애도의 뜻을 표한다.

  고 박만기 씨는 1935년,12월 19일 평양에서 출생하여 청, 소년 시절을 보내다 1950년 6.25 사변으로 남하하여 경동고등학교를 졸업 후 부산에서 한국해양대학교 항해과를 졸업하고 해양선 선장으로 근무하다 1965년 미국으로 유학 와 LA에서 거주하다 
1975년 새크라멘토로 이주하여 박 텍사코 주유소와 자동차 정비업을 운영하다가 2019년 현장에서 은퇴 후 2022년 2월 26일 타계했다.

  위의 학력이나 경력 같은 것은 일반적으로 겪는 일상이라고 말 할 수 있겠으나 내가 오늘 고 박만기 씨의 타계에 대한 애도 감은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첫째로 그가 운영하는 차 정비소에는 당시 한인 유학생과 지역 한인들 중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무료로 차를 수리해 준 예가 수없이 많았다는 것, 특히 그의 특유의 평안도 사투리로 ‘돈 걱정 말고 가시라요’하던 너털웃음 속의 따뜻한 인정미에 감동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 이제는 그런 웃음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애절함, 정말 아쉬움을 느끼며 그의 인자하고 포근한 얼굴이 떠오른다.

  다음 두 번째로는 새크라멘토 지역 단체, 한인회, 노인회, 재향군인회, 샬롬회, 한국학교 등 많은 단체뿐만 아니라 어려운 한인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 심지어 어느 단체장은 고 박만기 씨는 지역사회 금고라고 말할 정도로 어려우면 달려가 지원을 부탁하고 도움을 주던 그가 타계했으니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하는 단체장도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의 업적 중 가장 큰 공로는 현 새크라멘토 교육문화 회관 구입의 주역이 바로 고인이라는 것을 이 지역 한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지금 한국학교는 1993년, 당시 학교 이사장 고 박만기 씨가 주체가 되어 학교 건축위원회를 구성하여 2000년까지 7년 동안 26만 불을 모금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자체 건물이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만일 그가 없었다면 오늘과 같은 건물은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정말 건물마련은 우리의 자랑이고 미주 역사상 처음으로 학교 자체 건물을 마련했다는 것은 정말 두고두고 자랑할 일이고 그 뒤에는 그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업적으로 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정부에서 수여하는 대통령 포상을 2002년도에 수상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개인적 면모나 너그러움은 이 동네의 해결사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이 지역 단체 간의 갈등이나 개인 간의 불화, 심지어는 가정불화까지도 그에게로 와서 도움을 요청할 정도로 모든 것을 너그럽게 보살펴주던 그의 따뜻한 모습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우리는 거인을 잃었고 지도자를 떠나보냈다. 
남은 우리는 협심 단결하여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지역사회를 위해 노력하자. 그것이 고인의 뜻을 계승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협동 단결하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고인의 유가족인 박영순 여사에게도 진심으로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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